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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umarinai and Forced Labor

메이우선・우류댐・강제노동

메이우선(후의 신메이선) 철도 공사(1935년~1939년)와 우류댐 공사(1938년~1943년)의 주된 노동 형태는 '타코베야(‘문어 방’이라는 뜻)' 노동이었습니다. 선불금을 받고 팔려온 타코베야 노동자는 기업이 경영하는 타코베야에 구금돼 강제노동을 했습니다. 일본인 노동자뿐만 아니라, 1940년경부터 강제동원된 조선인 노동자의 수는 약 3000명에 달했습니다. 10년 간의 공사 기간 중 최소 200명 이상의 희생자가 확인되는데, 그 중 40명 이상이 조선인이었습니다. 일본인 타코베야 노동은 반 년 간의 구금 노동이었지만, 조선인의 경우 2년 계약을 강요당해 구금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명목상의 계약 기간조차 무단 연장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아래는 강제노동 조선인의 증언입니다.

“제1공구만 해도 (조선인이) 2000명은 됐을 것입니다. 탈주해서 잡히면 전원 집합시켜 그 앞에서 린치[1]를 당합니다. 그들은 정신을 잃을 정도로 때리고, 정신을 잃으면 물을 끼얹어 다시 때립니다. 이를 몇 번이고 반복해서 죽기에 이른 적도 있습니다. 부상을 당하거나 병에 걸린 사람도 함바[2]에 남겨 두지 않고, 망태기에 싣고 작업장에 데려가 망태기 수선 같은 일을 시켰습니다.”(전후 시베츠시 거주 재일조선인 생존자)

 

[1] 린치(lynch)'는 법적 절차 없이 폭력을 가하는 행위. 구타를 뜻함.

[2] 일본어 '飯場(はんば)'에서 유래한 말로, 건설 현장이나 광산 등에서 노동자들이 이용하는 간이 식당.

슈마리나이 주민들은 봄철 해빙기에 골짜기에 들어가면 시신이 누워 있는 것을 발견하거나, 우류강에 떠내려가는 죽은 사람을 보았다고 합니다. 사망한 노동자 대부분은 댐 공사장 인근 '광현사'로 옮겨졌고, 위패만 남긴 채 슈마리나이 공동묘지 주변에 매장되었습니다. 전쟁이 끝난 후 그곳은 조릿대가 우거진 대숲이 되었습니다. 사망자는 유족에게 알려지지도 고향에 돌아가지도 못하고, 오랫동안 대숲의 땅속에 묻힌 채 남아있었습니다.

소라치민중사강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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